
나와 함께 2년여의 시간을 보낸 손전화 Motorola MS280 - Spin Moto 이다.
이 전화를 구입할 당시 마땅히 맘에 드는 모델이 없어서 어떤 것을 살까 고민하던 차에 이 녀석을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이 (다른 후보들 보다) 좋아서 결정을 했었다. 그것 이외에 다른 이유는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마음에 탁! 드는 모델이 아니어서인지 사용하면서도 그다지 애착이 가질 않았다. 문자 입력 방식도 불편하고, 소프트웨어의 반응도 느리고 기능들도 그다지 직관적이지 못하였다. 전화는 쉽게 뜨거워 지고 표준형 배터리는 오락가락 하다가 1년이 조금 못되어 생을 마감하고 뚱뚱하고 묵직한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다. 이래저래 별로이지만 할부18개월의 압박으로 꾹꾹 참고, 할부가 끝나니 '그래도 2년은 써야지' 하는 마음으로 꾹꾹 참고, 또 '아직은 마음에 드는 모델이 없어' 하면서 꾹꾹 참아오고 있다.
얼마전의 일이다. 연구실 사람들과 같이 학교 뒷산에 올랐었다. 바위로 이루어진 가파른 봉우리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도중에 내 주머니에서 빠진 전화기가 한 4-5미터 되는 높이에서 바위를 타고 굴러내렸다. 그 때의 심정은... 아쉬우면서도 시원했다. 나름의 최저 사용기간인 2년도 넘겼고 마침 관심가는 휴대전화 모델도 출시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어서, 그것이 떨어지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아 이제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웬 걸, 다른 등산객 분께서 주워다 주신 나의 전화기는 겉에 거친 흠집만 났을 뿐 전원도 꺼지지 않았고 뻔한 코스인 배터리 분리도 되지 않았다. 마치 '난 아직 멀쩡하다구' 하며 시위라도 하는 듯 했다. 허허..
나의 전화기를 사용하면서 당하는 가장 큰 불편 중 하나는 버튼이 잘 눌리지 않는 것이었다.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버튼이 제대로 눌리지 않으면 순간 화가 치솟는다. 벽을 향해 힘껏 내던지고 싶은 욕구! 그래서 어제는 전화기를 분해하여 키패드 부분을 닦아주었다. 그랬더니 마치 새 것과 같이 버튼의 눌림이 좋아졌다. 아직 배터리도 멀쩡하고 버튼도 잘 눌리고 DMB니 MP3니 하는 기능들은 내게 필요가 없으니 앞으로 일년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통화가 깨끗하게 되었으면 바람이 있을 뿐.
휴대폰의 껍데기는 나사를 풀고 서로 잡아주고 있는 걸쇠를 풀어주면 쉽게 분리할 수 있다. 껍데기를 분리하면 보통은 액정과 키패드 부분이 제일 위에 드러나 있다. (당연한가?!) 키패드 부분을 보면 숫자가 눌리는 자리에 은색의 볼록한 원형 버튼들이 있다. 이것들은 하나의 접착시트에 나란히 정렬되어서 기판에 붙어 있는데, 이 접착 시트의 한 귀퉁이를 잡고 기판으로 부터 살살 떼어내면 쉽게 분리된다. 그런 후에 기판의 누런색 동판 부분과 볼록한 원형 버튼의 안쪽--기판과 마주한 쪽--을 지우개 같은 것으로 깨끗히 한번 닦아주고 다시 역순으로 붙여서 조립하면 새 것과 같이 버튼 눌림이 좋아진다. 이 때 접착시트의 접착면의 접착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접착시트가 기판에 제대로 붙지 않으면 말짱 꽝이다.
요즘 온갖 기능을 우겨넣은 전화기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오히려 이것이 나의 휴대전화에 대한 욕심을 반감시키는 것 같다. 휴대전화는 통화와 문자만 확실하게 잘 되면 된다. 나의 생각은 그렇다. 전화기는 전화기로서의 기능에 충실하면 된다. 제발 깔끔하고 간단한 디자인에, 기본 기능에 충실하고, 배터리가 효율적이고 껍데기가 튼실한 그런 휴대폰이 출시되길 기대한다. 요원한 기대겠지만.